누가 재미없는 이 글을 끝까지 읽을지 모르겠지만 내 나이는 서른둘,  서른셋이 되는 이 순간에 내 나이가 스무 살이던 2007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다소 내 인생이 노력없이 미화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저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회상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일 뿐 나는 아직 노력 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참고로 이글을 써내려간 때는 바야흐로 2019년 11월 28일이다.

 

2007년 (대학교 입학)

 

이름도 없는 수원의 모 대학교, 지지리도 공부 안 하던 나에게는 이름이 없는 학교였음에도 나에겐 어림도 없는 학교였는데 다른 공부는 몰라도 수학만큼은 재밌게 공부했던 나에게 내 인생의 첫 번째 동아줄이 내려왔다. 바로 '컴퓨터 공학부 수학 특기자 전형 수시모집'

그렇게 첫 번째 동아줄을 잡아 컴퓨터라고는 게임밖에 모르던 내 인생에 개발자의 삶이 시작됐다. (이땐 몰랐다 내가 개발자가 될 줄은)

 

사실 이 시절에는 사진동아리에 들어가서 그 생활에 젖어있다 보니 나는 내가 사진작가가 될 줄 알았다.

지금도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지만 이 실력에 사진을 직업으로 삼았더라면 굶어 죽기 딱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2년 (대학교 4학년 & 깍두기)

 

대학교 시절 거의 모든 시간을 동아리 생활에 치중하면서 놀기만 하다가 거짓말처럼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고,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놀기만 하다 보니 3학년 2학기까지 나의 학점은 4.5점 만점에 2.3점이었다. (D가 뭐 이리 많은지)

사진을 직업으로 하겠다면 모든 지원을 끊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사진을 배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물론 지지리도 공부를 안 해서 배우진 못했다) 개발자로의 임시 취업을 결심했다.

 

어떻게든 학점이 3은 넘어야 취업이 그나마 될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사진작가의 꿈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4학년 때부터 뒤늦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시절에는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팀 단위 과제가 4학년 1학기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졸업을 위한 전공 학점을 필사적으로 채우기 위해 수강한 안드로이드 수업에서 찾아왔다.

편성된 우리 팀은 세 명이었고 학점이 빵빵하던 두 명은 수업을 포기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찍찍 씨부리더니 결국 나를 홀로 남겨두고 수업을 떠났다. (그땐 미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 입장만 생각하고 미워했던 것 같다. 잘 지내시죠?)

 

혼자라도 무조건 좋은 점수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교수실을 찾아가서 '나는 이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절박하니 혼자라도 과제를 진행할 것이고 세 명이 하는 양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편의를 봐달라'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교수님은 '일단 해보고 얘기하라'라고 이야기했다.

 

안드로이드 수업뿐만 아니라 개발 관련 전공 수업, 타 과(정보통신)의 개발 관련 수업을 전투적으로 무지막지하게 몰아넣은 나에게 안드로이드 팀 과제를 혼자 견뎌내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그래도 일단 절박했기에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과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인생 처음으로 A+라는 점수를 받고 나도 할 수 있음을 느꼈다. 다른 개발 관련 수업에서도 여태 받아본 적이 없던 점수를 받게 되고 점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정말 받아도 되나 싶은 장학금과 함께 4학년 1학기가 끝났다.

 

그 해 여름 방학 내가 몸담고 있던 40년 역사와 전통을 조금 자랑하는 사진동아리에 차기 동문회장을 맡게 되고, 동문 선배들과 우연히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술은 지기 싫었던 어린 시절 속 나는 그날도 역시 아침 해가 뜨는 순간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끝까지 지켜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 몇 안 남은 사람들 중 처음 보는 아저씨(동문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술 많이 먹은 것 같은데 잘 버티네 너는 무슨과냐?"라는 물음에 답하고 나니 명함을 주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 명함은 내 아직까지의 인생을 개발자로 둔갑시켜버린 내 인생 두 번째 동아줄이었다.

 

명함을 보니 듣도 보도 못한 작은 개발회사였지만 함께 취해가던 그분이 대표였다.

또래들보다 개발 공부도 늦게 시작했을뿐더러 성적도 낮고 불안한 미래를 준비 없이 불안해하기만 하던 나였기 때문에 순간 그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술이 깨고 난 다음날 바로 명함을 보고 만나자고 전화했고, 그다음 날 그분의 회사를 찾아갔다. 당시 사무실은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좁은 건물이었다.

 

사장실이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당장 4학년 2학기는 학점을 채우기 위해 일주일에 3일 정도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주일에 이틀만이라도 회사에 나와서 뭐든 배우게 해 준다면 방해 안되게 열심히 하겠다고 부탁했고, 아저씨였던 동문선배가 2학기가 시작되는 9월 1일부터 사장님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직원도 인턴도 아닌 쓸모없는 깍두기 같은 상태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월 화 수는 학교에 가고 목 금은 회사에 나가게 된 것인데 월 화는 수업이 꽉 차있었고, 수요일은 같은 교수님의 수업이 연달아 두 개가 있었다. 역시나 정신 못 차린 나는 그 교수님께 찾아가 취업을 했는데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과제만 제출하면 최대 학점을 B로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은 자체적인 휴식의 날로 지정했고, 회사에는 수요일도 열심히 학교에 가는 척했다.

 

어쩌다 보니 2012년도 마무리되어가고 미처 지우지 못한 몇 개의 D와 함께 학점 3.08로 졸업을 하게 되고 이제 졸업도 했으니 계속해서 함께 일하자는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회 초년생에게 있어서 '초봉'은 굉장히 중요한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역시 나의 경험치와 보잘것없는 지식, 낮은 학점 등으로 인해서 그 당시 또래들보다 상당히 떨어지는 연봉 2000만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1800만원을 제시했지만 이런 말 저런 말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말까지 다 내뱉고 일궈낸 연봉이다.) 

 

작은 회사였지만 그래도 복지가 없지는 않았다. '석식 제공'이라는 복지, 야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복지가 존재했다.

 

2013년 (개발 1년 차, 2개의 짧은 프로젝트)

 

지난 3개월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일했지만 남들보다 3개월을 빨리 실무에서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는 상태로 개발 1년 차에 임했다. 이때는 그 당시에도 다 죽어가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ASP(ASP.NET 말고 Active Server Pages)로 제작된 거의 완성된 홈페이지를 소스를 넘겨받아 마지막 남은 수정 작업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요즘엔 구경도 못 할뿐더러 쓸모도 없는 아주 생산적인 일을 했다. 실제로 그 이후로 ASP를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1년의 절반을 ASP에 쏟아부었다.

 

이후 순수하게 네이티브로 이루어진 병원 예약용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을 처음부터 개발하게 되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드로이드 개발에 대하여 실무적인 지식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말단 사원일 때 안드로이드를 함께 개발한 사수(?)가 아주 실력 있는 부장급의 개발자였고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매일 밥도 안 먹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건 당연하고 매 순간 눈치를 엄청나게 줘서 실력이 늘은 건지 센스가 늘은 건지 아무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석식 제공이라는 좋은 복지가 있는데 왜 밥을 안 드시고 일하셨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2014년 (개발 2년 차)

 

연봉 협상 시즌이라는 설렘을 안고 2년 차가 시작되었다. 2000만원으로 시작한 나에게 사장님이 지금 생각해봐도 엄청난 금액을 제시했다.

무려 2200만원이라는 ㅏ미ㅓ;ㅇㄴ러ㅔ배ㅈㄷ갸ㅕㅣㅏ;먼ㅇ, 역시 협상이 아닌 통보였다.

 

회사에 나이가 좀 있으신 대리급 형님 두 분과 자주 술을 마시던 중 회사에 새로운 부장님이 오셨는데 부산분이셨다. 나는 김해 출신이라 뭔가 친근했다.

2014년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 분들과 술을 마셨는데 새벽 4시쯤 만신창이로 술이 취한 나는 핸드폰 날짜에 표시된 "금요일"을 보고 자고 일어나면 "토요일"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걸까? 금요일 오후 2시에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출근을 했고 부산 부장님께 사투리로 엄청난 욕을 먹었다.

 

그 시기에 프리랜서분이 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3주를 남겨놓고 프리랜서분이 백기를 들었고, 결국 무너져버리고 소송의 위기에 처한 프로젝트였다. 술 먹고 오후 2시에 출근한 죄(사실 내가 멍청한 짓을 안 했어도 회사 입장에서는 대안이 없었다)로 부산 부장님, 나, 갑자기 뽑은 프리랜서까지 셋이서 3주간의 아주 무겁고 빡센 개발을 진행하게 됐다.

 

그때 스프링프레임워크로 웹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미친 듯이 밤샘을 하면서 정말로 많은 걸 배우고 조금씩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술 먹고 2시에 출근한 게 멍청한 짓이 아니었나 보다)

망가져가던 프로젝트에 숨을 불어넣어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 정말로 많은 칭찬도 받고 회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았고 밤샘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젠 좀 칼퇴해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쉬게 되지 않더라. 하는 김에 좀 더 고생하자는 부장님의 말 한마디에 다른 무너져가는 프로젝트에 즉시 투입됐다.

그때부터 프로젝트에 불똥 떨어지면 불 끄러 가는 소방관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상황 종료 직후 만신창이가 된 나에게 꿀맛 같은 3일이라는 휴가가 주어지고 자주 듣던 사투리 탓인지 주말까지 4박 5일간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자마자 강남에 삼성로고가 박힌 으리으리한 건물의 프로젝트에 투입돼서 몇 개월을 고생하고 나니 짧은 시간에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2년 차 찌끄래기가 되어있었다.

 

그냥 찌끄래기에서 3년 차를 바라보는 2년 차 찌끄래기로 성장한 것이다.

 

2015년 (개발 3년 차)

 

고생한 것도 있고 이번엔 정말 연봉 협상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1년 차 2000만원 2년 차 2200만원의 가슴 벅찬 경험을 뒤로한 채 또다시 '사장실'이라는 곳에 들어가 협상을 진행했다

 

사장님의 태도가 지난해와는 완전히 달랐다. (안 꼬던 다리를 꼬고 계셨다. 무서웠다.)

"너 얼마 주면 되겠어?"라고 나에게 물어봤다. 솔직히 생각한 금액이 있었지만 순진한 척했다.

 

나 : 사실.. 어느 정도를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무한 뜸 들임)

사장님 : 한 2800만원 주면 돼?

 

생각보다 높게 제시를 해줘서 기분이 좋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세게 나가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했던 오래된 프로젝트까지 들먹이면서 최소 3000만원 정도는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사장님이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괜히 후회스러웠다 더 불러볼걸.

 

2015년도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이 배우고 전투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하다 보니 1년이 지났고 또 연봉협상이 기대됐다.

2015년에는 회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프론트, 백엔드를 닥치는 대로 함께 다루어 하이브리드 형태의 어플리케이션을 찍어냈고, 이후부터 계속해서 내 개발 포지션은 그렇게 이어졌다

 

2016년 (개발 4년 차)

 

또다시 찾아온 연봉 협상의 시간. '사장실'로 들어갔다. 솔직히 매년 더 큰 고생을 지난해의 고생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고생을 갱신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당당하게 3600만원을 달라고 말했는데 사장님이 3400만원을 제시했고 결국 3400만원으로 확정되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과 면접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면접을 봤는데 붙었고 36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정들었던 회사의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다. 그 날 저녁 사장님이 랍스터를 사주시면서 면접 본 회사와 똑같이 맞춰주면 남아있겠냐고 물었다. 살짝 뜸 들이다가 알겠다고 했다.

 

2016년도에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진행하면서 또 한 번 바뀐 부장님을 통해서 프레임워크 공통도 잡아보고 나름 규모 있는 DB설계도 경험하게 되었다. 2015년이었는지 2016년이었는지 애플의 새로운 언어 SWIFT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아! 2016년에는 몇 년간 운영해오던 블로그에서 월급보다 많은 수익이 5개월 정도 이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5개월이었고, 정말 누가 봐도 상업적인 블로그로 보일 때쯤 네X버에서 검색이 되지 않기 시작했고 모든 수익이 끊어졌다. 그때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더라면 괜찮은 중고차 한 대는 살 수 있을 텐데, 인간은 원래 뒤늦게 깨닫도록 만들어져있지 않은가. 뉴욕으로 여행도 떠나고 홀라당 다 써버렸다. 지금은 어디다 썼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2017년 (개발 5년 차)

 

5년 차에는 정말 이직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실제로 여기저기 이력서도 넣고 있었던 시기였고 또다시 찾아온 연봉 협상의 시간. 올해도 '사장실'로 들어갔다. 4000만원으로 협상을 마쳤다.

뿌려두었던 이력서에서 합격 통보를 받기 시작한 게 2017년 10월이었고, 익숙하고 정든 회사에서 나를 붙잡아 결국 연봉 4200만원으로 첫 회사에 남게 되었다.

 

회사가 휘청거릴만큼 어려운 시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2018년 9월까지 별 다른 연봉 협상없이 이 금액으로 회사를 다니게 된다.

게다가 블로그 수익이 한 방울까지 모두 사라지고 허탈해하던 나는 내가 똥을 눌 때도 들어오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2017년 처음으로 내가 만든 어플리케이션이 마켓에 올라갔다.

 

수익은 한 달에 400원 정도가 생겼는데 이런 걸 10개를 만들면 한 달에 4천원이 생기겠다 싶어서 오픈소스를 아무거나 막 가져다가 닥치는 대로 어플리케이션을 마켓에 출시했더니 엄청난 일이 생겼다.

 

1개일 때 수익이 400원이었는데 10개일 때 수익이 400원인 마법 같은 일

 

2017년의 포지션은 2019년이 된 지금까지와 비슷하다. 안드로이드, 프론트, 백엔드를 닥치는 대로 함께 다루어 하이브리드 형태의 어플리케이션을 찍어내는 것에서 학원에서 배운 SWIFT로 아이폰 개발까지 추가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실무에 녹여서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속한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고 늘 감사해하고 있다.

 

2017년 중순부터 1년 정도 되는 대기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고생 고생 생 고생하다 보니 2017년이 지나갔다.

 

2018년(개발 6년 차, 프리선언)

 

2017년부터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5월 정도까지 진행했고, 쉴 새 없이 짧은 대기업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9월까지 진행됐다. 계속해서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6년간 해왔는데 회사에서는 대안이 없었기에 나를 마지막으로 했던 프로젝트의 유지보수 인력으로 집어넣고 싶어 했다.유지보수로 넘어가게 되면 내 실력이 줄어들지 않을까, 성장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유지보수를 하게 될 바에 퇴사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프리선언이라는 큰 도전을 하게 된다.

 

프리를 선언하고 퇴사 날은 다가오는데 4개월 6개월 다양한 프로젝트 중에 어떤 걸 골라야 할지 1년에 일이 없는 시간은 얼마나 될지 불안해하던 중 아까 유지보수는 하기 싫다고 했던 그 프로젝트에 프리랜서로 제안을 받았다. 여긴 1년씩 계약이더라. 안정적인 게 최고니까 일단 해보자 싶어서 시작한 유지보수를 2019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처음으로 신중하게 제작한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이 마켓에 출시됐다. 지금까지도 한 달마다 꾸준한 수익을 주고 있다.

 

2019년(개발 7년 차, 프리랜서)

 

난 절대 유지보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며 퇴사와 함께 프리를 선언해놓고 그 유지보수를 아직도 하고 있다. 각 연도별 연봉협상 결과를 밝혔지만 2018년에 이어 한 곳에 지금도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계약금액에 대한 건 밝히지 않겠다.

아무튼 유지보수를 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강하지만 육체적인 스트레스는 약했고, 힘들게 야근을 하는 일도 거의 없어서 내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는지 이 생활이 점점 마음에 든다. (안 한다고 죽어도 안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물론 케이스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하는 유지보수는 야근이 거의 없고 남는 시간도 꽤 있기 때문에 혼자서 어플리케이션도 추가로 제작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업무 외에 많이 하면서 언젠가의 내 서비스, 나의 대박을 꿈꾸고 있다.

 

SI에서는 몸이 힘든 만큼 프로젝트가 끝나고 마무리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는데 SM에서는 역시 성취감을 잘 느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다른 프로젝트나 자기 계발 등을 하면서 업무 외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문제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든다. 

 


내 만족으로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앞뒤도 안 맞고 뭐 다 연봉협상 얘기뿐이고 재미없다.

재미없는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모든 분들께 용서를 바라지 않는 사과를 바친다.